공혜진 : 단단한 잎은 바다에 있네
Kong Hye-jin : Strong Leaves Lie in the Sea
2024. 11.20-12.08
도록 : 디오브젝트
작품설치 : rosa, 공혜진
하루종일 바다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눈을 감으면 눈앞에 모래사장이 나타나고, 나는 계속 그위를 걷고 있다. 분명 컴컴한 방 침대 위인데, 눈을 감으면 모래사장 위다. 파도가 밀려오고 조개와 돌들이 반짝이며 나타나면, 나는 빠른 손놀림으로 주워 담는다. 종일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웠더니,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은 장면이다.
파도가 깊숙하게 들어온 모래 위의 흔적을 따라 바라보면 그 자리에 어김없이 조개껍데기나 산호 조각 돌멩이가 보석처럼 반짝이며 나타났다. 손가락을 세워 조개를 주워 올리는 순간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다만 귀에 들리는 파도 소리가 더 이상 밖의 소리가 아닌 내 안의 소리가 되어 정신은 투명해지고, 모든 감각은 눈으로 집중된다. 파도에 실려 온 것들을 손바닥에 올려 아침의 빛에 바라보자니 생뚱맞게도 지구와 우주와 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내가 자연 속에 있다는 것, 지구 안 우주 안의 한 점이라는 것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조개껍데기 하나에서 이런 느낌들이 들 수 있다는 것이 말도 안 되게 이상하지만 손으로 만져지는 조개껍데기가 그 증거이다.
얼마만큼 살았는지 알 수도 없는, 생각하지 못한 형태와 구조, 색을 가진 창조물이 예고도 없이 사방에서 나타난다. 신비한 아름다운 생명체, 그들이 바다에 있다. 그것에 빠져버린 것이다. 끝이 없이 나타나는 창조물이 있다는 것. 직접 가서 보기만 하면 아름다운 창조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그렇게 완전하게 빨려 들어갔다.
언제부턴가 집을 나설 때면 주머니 속에 새끼 손톱만 한 조개껍데기를 챙긴다. 차로 이동하거나 짬이 나는 순간이면 주머니에서 조개를 꺼내어 본다. 틈새의 시간에 조개를 본다. 집안의 곳곳에도 조개를 배치한다. 밥 먹다가도 눈을 돌리면 식탁 옆에 조개가 있고, 옷을 입다가도 선반 위에 조개가 보이고, 신발을 신다가도 고개를 들면 조개가 있다.
보고 또 보고 본다. 조개에서 무늬를 찾는다기보다는 무늬가 보일 때까지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경을 벗고 눈을 가늘게 해서 흐리게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모니터 화면에 크게 띄워두고 보기도 한다. 어느 순간에는 몸을 구기고 구겨서 손톱만 한 조개 속으로 들어가서 무늬 속 세상을 걷기도 하고, 언젠가 어디선가 만나거나 보았던 이미지들을 무늬 속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조개라면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앞에 두고 눈을 부릅뜨고 보고 또 본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내 작은 점 하나. 선 하나에 의미를 찾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분명 부담스럽고 떨려서 저 멀리 도망가 있겠지…. 그렇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은 나의 저 깊은 곳에 있는 모습을 읽어주기를 바라며 나를 다듬는 순간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개 위의 작은 점하나, 선하나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며, 내 안 기억 속의 이미지들을 찾아 속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간다.
눈으로 조개의 무늬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이야기는 내 안에서 상상한다. 서로의 형태를 조정하는 초점 링을 돌려가며 선명한 하나의 상이 맺히도록 조율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가 그리던 상이 맞으면 선명한 그림이 나타난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나의 있는 그대로를 깊게 오래 바라볼 대상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림을 만들 수 있다.
공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