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 다시 살으라-빈 들 속에서
Lee Jin-kyung : Live Again- In Barren Fields
2024. 10.01-10.27
기획 : rosa
강연 : 배기성, 정석도
천도재 : 비서갑 운경
사진 : 윤남용
번역 : 봉춘홍
디자인 : 임산하
운송 : SL
후원 : 강원문화재단
이진경의 ‘다시 살으라 : 빈 들 속에서’는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다룬 묵직한 전시다. 하지만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우스꽝스러운 해태상처럼 유모어를 잃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강연(‘진실과 슬픔의 대한민국 50년대 현대사’ ; 강사 배기성 역사독립군)과 굿(천도재, 비서갑 운경)을 부대행사로 진행했던 전시의 성격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묵직한 진실의 전달과 이를 털어내기 위한 제의(위령제)가 함께 하는 전시는 일반적인 미술 전시와 차이가 있다. 일단 작품 수가 많고 전시장 일부는 제의의 공간이며, 거리로 나 있는 윈도 갤러리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의 장이다. 그것은 작가의 오랜 역사 연구에서 결론 내린, 역사적 비극의 원인과 결과를 제공하는 궁극의 기표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축인 제의는 미술보다 더 포괄적인 문화에 속한다. 제의가 요구되는 비극적 역사와 제의와 관련된 이미지/글자들이 위아래로 빼곡히 자리한다.
전시가 열린 개나리 미술관은 읽고 깨닫고 변화하는 장이다. 이진경이 활용하는 문자라는 주요 소재는 의미와 밀접하다는 점에서 무겁지만, 지시대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표들은 현실과 상상에 보다 유연하게 작동한다. 어눌해 보이는 글자체와 그림체에 실려온 내용은 매섭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시대, [자유](2016)--많은 작품이 전시되었지만,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선별된 작품들이기에, 제작연도는 최근 작품 아닌 것만 표기한다--등, 의미가 변질되어 가고 있는 단어 또한 그자체로 큰 울림을 준다. 예술은 역사적 탐구와 진실의 전달이라는 역할을 자임한다. 하지만 이진경의 작품은 내용을 전달하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보의 홍수 시대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수단이자 목적이 되어 자체적으로도 음미할 만한 색다른 형식을 제공한다. 이진경의 글자-이미지는 내용과 형식이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경우이다.
미학사는 내용/형식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역사가 아니었던가. 쓱쓱 선 몇개로 그린 글자와 이미지들은 지시대상과 무관하게 그자체로 생동하는 실재감이 있다. 그것은 음식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이미지에서 분명하다. 전시장이 제의적 공간이기도 해서 그런지 음식은 많이 등장한다. 수묵으로 그린 간장인 [간장](2021)은 묵은 간장 배어들듯 깊은 감칠맛이 있다. 떡과 밥 등 우리 민족의 에너지원도 자주 등장하여 군침을 돌게 한다. 다양한 제작 연도를 가지는 음식 이미지는 대부분 제사상 차림으로 통일시켰다. 글자를 닮은 채소들이 있는 작품 [오는 봄]에 나타나 있듯, 이진경에게 글자와 이미지는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농사처럼 실재적이다. 작가는 2002년부터 ‘쌈지길’과 ‘쌈지농부’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로고·공간 디자인 및 ‘이진경체’ 폰트를 제작한 바 있다. 이진경의 작품은 부적이나 영험한 이미지처럼 기표 그자체로도 힘을 발휘하는 전통과 접속해 있다.
그의 개성적인 한글 서체는 지시대상과도 무관하게 음미할 만한 요소가 풍부하지만, 제시된 기표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진경의 작품은 이미지를 다시 보게 하는 반복과 차이의 어법을 실행한다. 작품 [개나리](2013)에서 검정과 노랑의 눈에 띄는 색깔 배치와 기하학적 구도 배치는 경고의 의미를 띄며 ‘개나리’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느낌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첩첩산](2009)은 산 모양의 붉은 색 표시가 이합집산하여 산같은 모양새로 나타나며, 여러 버전이 있다. 문자도를 연상시키는 작품군은 기호와 이미지의 교차점에 있다. 최근 작품인 [목숨 수]는 한자어 목숨 수(壽)자가 되는 먹선들을 보여주는데. 한자어 중 유난히 획이 많은 이 글자는 또 다른 작품에서 문자도처럼 문자 기호와 이미지가 결합된다. 여성의 수난사와 관련된 붉은 꽃은 기원을 담은 부적 역할을 한다. 이미지나 글자가 색다른 재료와 만나서 물성이 강조되는 경우도 있다.
이진경의 작품에서 물성은 이미지나 문자의 실재감과 메시지 증폭시킨다. 제주에서 수집된 오래된 각목들 위에 국가 폭력 사건들이 수묵으로 씌여진 [국가폭력 범죄피해자]가 그것이다. 이 작품군은 각목들 색깔처럼 장소와 시기는 달라도 제시된 사건들이 비슷한 유형의 범죄임을 암시한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에서 글자가 씌인 각목은 바닥 위에도 세워진다. 작가가 기표와 물질을 결합하는 예는 이러한 큰 역사 외에도 조개로 그린 [산수], 한복 천으로 만든 [연꽃], 꼬막과 제기, 조화와 화병 등 일상이라고 분류되는 작은 역사에서도 만난다. 작가는 젊은 시절 외국에서 중국의 공연을 접하고 기술적 숙련도로부터의 거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기예보다는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소박한 필체는 예술이 늘 상 소급하고 싶어 하는 순수한 표현에 근접한다. 기표를 자유롭게 다루는 작품은 시간대와 주체를 확정할 수 없는 무의식의 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보다 ‘의식화’한다. 지금도 기표들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만인에게 주어진 스마트폰은 용이한 수단이 된다. 북한 주민을 계몽한다면서 북으로 보내는 전단들, 이에 반발하여 짐승 소리, 귀신 소리 내보내는 북한의 동향이 섬뜩하다. 국가가 동원되는 조직적 범죄는 동서와 좌우를 막론한다. 흉악 범죄자를 전쟁 병력에 동원한 독재자 때문에 참전 후 다시 동일 범죄를 반복해 범죄율이 엄청 높아졌다는 러시아의 상황이나 ‘러시아어 일절 모른 채 전선 투입’이라는 북한군 소식도 들린다. 이진경은 일상 속 평범함 뿐 아니라 신화나 역사까지 소급한다. 춘천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춘천의 고대국가인 맥국과 2005년까지 춘천 한복판에 주둔했던 주한미군 부대에 대한 사료 수집을 거쳤다. 아직도 암흑 속에 묻혀있는 국가폭력에 관련된 사건들, 그 결과 중의 일부인 ‘양공주’와 ‘혼혈아’ 등, 이번 전시에서 호명은 현대미술의 미학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타자화 되어왔던 이들이다.
현대미술이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 독백을 읖조릴 때 ‘빈 들 속에서’ 타자와 대화한다. 작가는 ‘...먼저 앞선 이들을 찾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본다. 기막힌 일이 참 많다. 세상이 어지럽다. 나는 너다. 이제야 안다. 내가 나일 땐 알 수 없다. 나는 너다. 내가 너일 때 바로 숨 쉬고 환하게 그릴 수 있다. 세상은 수 없는 너이고 그래서 나다....’ 이번 전시에서 인상적인 것은 마치 역사적 연표처럼 글자로만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민중들의 대량 살상이 이루어졌던 6.25, 제주 4.3항쟁, 대구 10.1항쟁, 여수 순천 항쟁 등, 양공주, 혼혈아의 역사가 적혀있다. 알려진 사실이든 아니든 한글자씩 짚어가며 읽어보는 과정에서 떨어져 있는 사건들과의 관계를 추리하게 한다. 포스트 잇으로 붙인 듯한 형식은 역사가 계속 편집되는 것임을 말한다. 작가는 현상과 사건의 배치, 색깔 등으로 간접적으로 말한다. 작품 [대학살]은 제주 4.3항쟁, 대구 10.1 항쟁, 여수 순천 항쟁 등이 다루어진다.
특히 1950년 민간인 1400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되어 대전 인근 산에 매장된 보도연맹 사건 등 민간인 학살이 많았던 근대사를 들추어낸다. [양공주]는 미제국주의와 여성의 수난사가 겹치는 대목으로, 작가는 일제시대 공창제가 1950년 여름에 부활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두 제국의 연결고리를 말한다. [혼혈아] 또한 외화벌이로 전락한 해외 입양 등과 관련되며, 제국주의와 국가폭력의 결과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윈도 갤러리에 배치되어 보다 많은 사람이 보게 한 작품군에서 두드러진다. 미군의 표장과 함께 주한미군의 역사를 길게 적은 [주한미군]과 [미키 마우스]는 해맑은 이미지로 다가오는 침탈의 역설이다. 국가폭력 사태에 제국의 묵인이 있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압도적인 역사적 사실의 충격 앞에 누군가 한 말을 그대로 적은 작품도 있다. 한지 위에 먹으로 쓴 [이승만 명령]은 ‘제주도민 30만명이 모두 죽어도 좋다’고 말한 전범의 적나라한 실상을 폭로한다. 작품 [이승만]에서는 지금도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국가의 시조로 떠받들어지는, 이승만이 벌인 국가폭력들 자세히 조사해서 나열한다.
작가는 별다른 설명 없이 노랫가사나 단어 그대로를 제시하기도 한다. [38선], [산 자여], [자유], [이별이 너무 길다], [지금] 등이 그것이다. 글자 그자체로만 울림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은 비극의 근대사와 이념이라는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물론 글자의 획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감이나 색의 선택은 조형적으로도 말한다. 글자로만 이루어진 제사상 메뉴가 있는 작품 [제사상]은 상징적, 시각적 기표의 힘을 결합시킨다. 기표는 [위장무늬](2010)나 [풍경](2007)처럼 추상적이지만 그 와중에도 미제국주의나 모자이크 처리해야 할 장면이 많았던 붉게 물든 우리 근대사를 연상시킨다. 국가폭력 중 여성에게 가해진 것들은 최근에 제작된 것들이 많으며, 이 전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작품 [기지촌]은 강제적 성병검사와 관리를 했던 ‘몽키 하우스’ 등, 국가가 포주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소재로 한다. [기지촌-윤금이 사건]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반대하는 기지촌 여성운동을을 다룬다.
여성을 매개로 하면 미국이라는 제국에 더 소급되는 제국이 일본임이 자명해진다. [도라지꽃]은 ‘16-19살 경험없는 조선 처녀를 부르는 암호’인 도라지꽃을 통해 조선총독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공급된’ 위안부를 호명한다. 실존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호명 행위는 한글의 표현력을 극대화시킨 이진경의 작업에서 중요한 예술적 전략으로 평가된다. 작가는 [창녀촌]에서 한반도 성매매 집창촌의 시작을 밝힌다. 그에 의하면 ‘1876년 개항 후 일본의 조차지에서 시작하여 점차 한반도 전역으로 퍼졌다’. 붉은색으로 그려진 여성의 초상은 자못 중립적으로 그려진 듯하지만, 서려 있는 한을 감추지는 못한다. 그래서 무섭게 다가오기도 한다. 작품 [순덕이](2022)나 [양공주]에서 붉은색으로 그린 여성의 얼굴은 단순한 약자나 희생자이기 보다는 주술적 강인함이 깃들여 있다. 위령제와 함께 하는 이 전시에서 무속적, 민속적 이미지는 다수 발견된다.
[꼭두]는 전시가 열린 춘천지역에서 활발한 연극을 반영하며, [꼭두각시]는 고구려에 있었던 인형극의 여러 용어들을 나열한다. [새참 나르기](2014)에서 여성은 집, 대지, 밥 등 실재와 연결된 존재였는데, 근대 국가와 제국, 가부장제와 결합된 폭력에 의해 꽃이 되어 꺽이고 짓밟혔다. 작가가 역사를 보는 시각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역사의 타락이 있기 전의 시공간인 신화에 대한 관심’(종교학자 엘리아데)은 그 증거다. 최근 작품 [맥(貊)]은 우리 민족이 맥족임을 알려주는데, 맥은 ‘우리 조상님들이 신수로 받아들여 숭상한 짐승’이라고 한다. 많은 고난을 겪어온 민족의 영험한 수호자같은 모습이다. 코끼리 등 여러 동물의 특성이 융합된 환상적 존재는 포스터에 담겨져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다. [맥궁]. [맥이], [맥족] 등 일련의 ‘맥’ 시리즈는 우리의 역사와 신화를 업수이 여기는 시대에 역행하여 꼼꼼한 탐사가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이진경은 역사가들과 협업한다고 말한다.
‘정의를 지키는 동물’로 호명된 [해태]는 ‘시비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이 있는 [해태-공평무사]는 현재의 대한민국에 절실한 존재로 보인다. 이진경 전은 불편한 진실이 다수 튀어나옴으로 인한 마음의 평화 상실, 갈등과 분란 조장이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어쩌자는 거냐라고 늘상 묻던 현상옹호론자, 기득권, 현실도피자에 대해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은 무익한 기계적 반복이나 재현이 아니다. 다시 쓰기는 다시 읽기를 낳기 때문이다. 작품으로 던져진 화두는 관객의 재해석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의미를 바꾸는 것은 모든 것을 바꾼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며, 이러한 신념하에 행해진 활동, 또는 실천을 통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맞이하려는 이들이다. 작가는 겹쳐 쓴 두 글자 [어제 오늘](2015)에서 어제를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 어제의 폭력을 잊는다면 그 폭력은 재차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선영(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