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복 : 찬란한 순간
Lee Jae-bok : Brilliant Moment
2023.08.30 ~ 2023.09.10
작품설치 : 김영훈
평론 : 장혜란
후원 : 춘천문화재단
이재복은 2021년 “모든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하나의 형태나 현상으로 고정되어있지 않다”는 뜻의 《제행무상》을 타이틀로 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삶 속에 마주하는 모든 존재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은 ‘바로 여기 지금’의 순간들을 회화적인 방식으로 붙잡아두려는 작가의 반복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이러한 존재와 시간성에 대한 인식은 2019년 개인전 《0.013》에서 이미 예고되었다. 0.013초는 극히 최소의 시간인 1찰나를 의미하는데, 불교에서는 1찰나(刹那)마다 모든 것이 생겼다 멸하고 멸했다가 생겨나며 무한히 계속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고 유한에서 무한성을 발견하고자 한 2019년의 수묵 작업은 2021년 《제행무상》, 그리고 2023년 《찬란한 순간》의 작업들로 발전되어 오면서 색과 질감들이 덧입혀지고 확장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대상에 대한 찰나의 기억들을 집적하고 흘러내리는 질감으로 화폭 전면을 구성하고 있다. 작가에게 기억은 분절되어 파편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간 속 대상들은 다수의 색면으로 재해석되어 화면 속에 채워진다. 분리되고 조각난 단서들은 완결된 연속성이 아닌 유동적이며 불분명한 형태로 재구성되며, 무수한 색면은 한순간도 같을 수 없는 시간 속 존재를 증명한다. 특히 이번《찬란한 순간》의 작품들은 ‘위장’(camouflage)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배경 속에 사물들이 숨어있는 듯, 대상과 대상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작가가 붙여준 제목처럼 ‘제자리(In Place)’를 찾은 화면 속 사물들은 그 순간에 녹아들어 주변 환경과 동화한다.
이처럼, 그의 회화는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기억 속 반짝이던 구슬 등, 0.013초의 찰나의 섬광들을 화면 속에 집적하고 녹여 제자리를 찾아 주려는 끊임없는 붓질로 이루어진다. 그 찬란하고 헛된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리고자 하는 욕망이 작가, 이재복을 추동하는 예술 의지이며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걱정과 근심, 관계의 불화, 불안정한 미래 등 힘든 삶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찬란하게 잠깐이나마 반짝이는 순간에서 우리는 행복을 발견한다. 그 순간들이 머무는, 녹아내릴 듯 달콤한 작가의 숲속을 거닐어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