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보 日日一步
공혜진
Kong Hyejin
2025. 11. 19 - 12. 07
후원: 춘천문화재단
문의 : 070-8095-3899
조개한테 들은 그림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데…로 시작하는 대화가 별거 아닌 적은 없고,
별거 아닌데…라고 건네는 것이 별거 아닌 적이 없다.
어쩌면 별거 아닌 것은 별거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난 흔한 것, 사소한 것, 작은 것, 말 그대로 별거 아닌 것을 그리고 있다고 말해왔다.
문득 내가 보고 있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별것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말이다.
나에게는 화단의 꽃들보다 각종 틈에서 제 힘으로 자라는 작은 풀들이,
잘 가꿔진 건물들보다는 갈라지고 뜯어진 벽들이,
화려하고 커다란 작품들보다는 손톱만 한 조개껍데기 하나가….
별거다.
보고보고 또 봐도 계속 볼 수 있고, 그리고 그리고 그려도 또 그릴 수 있다.
나에게 그들은 그렇고, 그들에게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돌들이 많은 강가에서 뾰족한 돌들의 중심을 잡아 맨손으로 탑처럼 높게 세우는 사람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숨 한번 크게 쉬면 무너져 내릴 듯이 위태로운 돌탑은 계속 높아진다.
한참 뾰족한 돌을 세우는 영상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나도 같이 숨을 참게 되고, 같이 집중한다.
마침내 돌들이 높게 쌓이는 순간,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같이 소리치게 된다.
도인 같은 그분은 사물의 중심 지점을 찾는 거라고 했다.
나의 중심과 대상의 중심이 맞아떨어지는 점 같은 하나의 지점을 찾는 거라고 했다.
상대와 내가 맞아떨어지는 한 지점을 찾는 것, 나와는 다른 상대와 내가 통하는 어떤 한 지점을 찾는다는 것은 나와 너로 나뉘어 있는 우리에게는 잡을 수 없는 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네가 서로의 구분이 없어지는 한 지점을 찾는 순간 우리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조개나 나뭇잎을 보다 보면 그런 순간의 느낌을 받곤 한다.
분명 조개껍데기의 점 같은 무늬였는데 보고 보고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무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선명하게 영상이 나타난다.
마침내 선명한 그림이 나타나는 순간, 그 순간이 주는 상대와 내가 뚫려버린 한 몸 같은 순간의 느낌 때문에 계속 바라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과도 그런 순간을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