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난 후
전영진 Jeon Youngjin
2025. 11.04 - 11. 16
후원: 춘천문화재단
문의 : 070-8095-3899
익숙하다는 것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 속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늘 제자리에 있는 것들을 무심코 지나친다. 누군가에게 나라는 존재도 군중 속 하나에 불과하듯, 인연이란 그 수많은 사건 속에서 우연히 스쳐 닿는 것 같다. 반려동물이나 작은 소품조차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이듯, 우리는 매일 많은 인연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 무수한 경우의 수를 뚫고 만나게 된 특별한 인연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다시 당연한 일상 속에 묻히기를 반복한다.
학부 시절 등굣길, 우연히 작은 화분 하나가 눈에 들어온 날이 있었다. 어린이대공원 맞은편에 있는 학교는 공휴일이면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변하곤 했다. 형형색색의 풍선,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 솜사탕을 파는 상인들로 거리가 채워졌다. 5월 5일의 어느 날이었다. 매일 지나던 길에서 2천 원짜리 커피를 사고 분식집을 지나 꽃집 앞을 지났다. 그날은 유독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서서 작은 화분 하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제대로 된 화분에 옮겨지지도 않은 얇은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작고 둥근 선인장이었다. 달걀 한 판처럼 옹기종기 진열된 화분들 속에서 유독 그 선인장 하나에만 눈길이 갔다. 천 원의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나는 훌쩍 커버린 나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그 선인장을 안겨주었다. 이름을 붙여주고 작고 아담한 화분을 골라, 옮겨 심었다. 처음 화분을 발견하고 멈춰 서서 교감하고 내 공간으로 데려왔던 그 과정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6년이란 시간 동안 ‘나의 화분’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애지중지하던 게 무색하도록 관심을 두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주변의 사람도, 오래된 물건도, 익숙해지면 당연히 거기 있을 거라는 생각에 소홀해지니까.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에 쫓길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10분 더 일찍 나왔을 뿐인데 눈 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한다. 매일 지나치는 산책로의 오리들, 계절마다 바뀌는 꽃들, 집 집마다 놓인 다양한 화분들,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한참을 모르고 지나친 것들…. 그동안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애써 모른 척했던 건 아닐까.
당연하게 늘 있던 것들에 점점 눈길이 머문다. 미안함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사진을 찍고 기록하고 그려본다. 무대 위의 배경이거나 소품, 혹은 엑스트라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임을 깨닫는다.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이들처럼, 나 또한 다른 이들의 배경에 불과하더라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전영진)